2020/11/20 11:41

육아휴직-5(요리는 주방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요리를 잘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해 볼 기회가 없었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해 준 밥에 의존했고 결혼 후에는 외식이나 와이프가 해 주는 음식을 먹었다.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럽다. 자기 입으로 들어갈 밥도 할 줄 모르는 어른으로 성장하다니. 하지만 코로나로 외식이 제한 받고 육아휴직으로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요리는 내 몫이 되었다.

 요리는 4단계로 이뤄진다. 1. 구상 단계, 어떤 요리를 할 지 선정 한 후 유투브 등을 통해 레시피를 알아낸다.(선후가 반대일 때도 있다.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선정하기도 한다) 2. 재료 구입 단계, 집에 있는 재료와 집에 없는 재료를 구분 한 후 집에 없는 재료는 마트에서 구입한다. 3. 재료를 보관한다. 예를 들어 대파는 흐르는 물에 씻어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아 낸 후 락앤락에 보관하면 3주는 신선하게 유지된다. 4.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한다.

 요리는 주방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주방에서만 이뤄지는 활동은 3,4단계에 불과하고 1,2 단계는 주방 바깥에서 일어난다. 실제 요리를 해보면  3,4 단계보다 1,2 단계가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머리 쓸일도 많다. 어떤 날은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종일 뭐하지 뭐하지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1,2 단계의 시간을 줄이는게 요리의 핵심이다. 그를 위해 기본적인 재료들, 예를 들어 파, 양파, 고추 등 각종 채소와 식용유, 올리브유, 참기름, 들기름 등 각종 기름, 설탕, 소금, 굴소스 등 각종 조미료는 항시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우유, 요구르트 등 아이가 찾는 간식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필수 재료 이외 주요리를 위해 구입한 재료의 재고관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등어 무조림을 하기 위해 고등어 2마리 1팩과 무 1개를 샀다면 실제 우리가족이 그 날 저녁에 소비하는 재료는 고등어 1마리와 무 1/4개 이다. 그렇다면 남은 고등어 1마리는 냉장 보관을 하면서 며칠 내에 구이 등으로 소비할지 아니면 과감하게 냉동 보관을 하며 후일을 도모할지 판단해야 하고, 무 3/4개는 소고기 뭇국 등 다른 재료와 조합하여 앞으로 몇 주간 소비할 계획을 대충이라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니 가족의 저녁 메뉴는 오늘 뭔가를 먹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의 1차 방정식이 아니라, 집 안에 있는 다양한 재료의 재고관리와 식성, 그 날의 기분 등을 종합한 고차 방정식의 해답이다.

 요리라는 중차대한 의무를 온전히 짊어지고 있어도 별 불만은 없다.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기도 하고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은 황홀하기 까지 하다. 무엇보다 재밌다. 1,2,3단계는 몰라도 4단계는 온전히 재밌다. 재료들을 순서와 양을 맞춰 기름에 볶거나 끓이면 어김없이 맛있는 음식이 된다. 매우면 청양고추나 고춧가루를 좀 줄이면 되고 싱거우면 소금이나 간장을 더 넣으면 된다. 세상 일 중 요리만큼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을까? 세상 일이 내 맘 같지 않아 상처 받았다면 요리라는 선연한 세계에서 치유 받으면 될 일이다. 물론 재고관리라는 난제를 뛰어 넘어야 하지만 말이다.    


2020/11/16 14:41

육아휴직-4(뒤바뀐 월요일) 시시콜콜한 이야기




 월요일이 싫었다. 주말에 쉬다가 출근해야 하는 부담감도 당연했지만, 월요일마다 이뤄지는 장관 주재 실국장회의가 끝나면 국장 주재 과장회의, 과장 주재 과 회의가 이어졌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지나치게 많은 페이퍼, 조직 내 긴장감, 월요일 이른 아침(심지어는 주말 내내) 울릴지 모르는 연락에 대기하는 삶이 싫었다. 육아휴직으로 인해 현재는 그러한 삶에서 좀 비켜나 있고 그래서 전처럼 월요일이 싫지 않다. 아니 사실 반대로 월요일이 이제 좋다.

 월요일이 되면 자유시간이 생긴다. 아이를 등원 시키고 하원을 할 때까지는 어쨌든 내 맘대로다. 물론 집안 살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이제 청소, 빨래, 설거지 등 기본적인 살림은 등원 후 1시간이면 충분하다. 게다가 장보기와 요리는 썩 재밌는 부분도 있어 크게 힘들지 않다. 집안일이 대충 끝나면 집 근처로 나가 운동도 하고 좋아하는 책과 음악도(요즘엔 주로 재즈) 양 껏 즐길 수 있다. 나는 가정에 충실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그 시간이 확보되지 않았을때 건강이 나빠진다. 당연히 삶은 불만으로 가득 찬다.

 주말도 긍정적이다. 주중에 내 시간이 확보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아이와 주말 내내 (힘들게) 놀아줘도 힘에 부치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겠다고 떼를 써도, 키즈카페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도 괜찮다. 해 줄 수 있으니 해주면 된다. 출근의 버거움을 생각하면서 주말에도 내 힘을 조절해서 놀아 줄 필요가 없다. 그러다보니 아이에게 내던 짜증도 줄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 보자. 어떤 삶이 내게 적합한 삶일까? 가족과 내게 내어줄 시간이 없어 온통 짜증으로 가득 찬 삶일까, 아니면 내 자신과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는 삶일까? 물론 근로소득을 포기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 시간을 모두 내어 (얼마 되지도 않는) 근로 소득과 바꾸는 삶은 나와 가족에게 적합한 삶일까. 모르겠다. 사실 모든 근로(일)가 나와 맞지 않는건 아닐텐데. 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에 또 풀어내기로..

 


2020/11/13 11:02

육아휴직-3(아빠가 어린이집 등하원을 한다는 건)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아내, 오래된 몇몇 친구들과만 교류를 한다. 일상 생활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식당 주문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타고난 성격이다. 바꾸지도 못하고 바꿀 필요도 없다. 모두가 사교적이고 외향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과 사교적인 건 전혀 다른 영역의 능력이다. 친절한 사람은 되고 싶지만 사교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직장어린이집(정확히는 청사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도 휴직 전에는 등하원을 전담하지 못했다. 아내가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직종에 근무하기도 했지만 잦은 출장, 조출, 야근 등이 겹친 나의 직장 생활은 등하원에 적합하지 않았다. (사무실 창문에서도 보이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도 등하원을 전담하지 못하는 직장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한심하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등하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교류해야 하는 일인지를.

 먼저 등원. 그래도 등원은 좀 수월하다. 아이를 깨우고 옷을 입혀 차를 태우고 어린이집 정문의 원감 선생님에게 인도하면 내 역할은 끝이다. 어린이집 가는 길 차에서 아이와 약간의 이야기, 이를테면 오늘은 언제 데리러 갈지, 저녁은 뭐 먹고 싶은지 등 소소한 소통만 능숙하게 하면 된다. 이런 소통은 오히려 즐거움에 가깝다.

 문제는 하원이다. 보통 4~5시 사이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는 아이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소상하게 말씀하시는데 사실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이의 생활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어른의 말로 아이의 생활을 이해할수 없다는 평소 생각 때문인지 멋적게 웃다가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만을 기다려 아이에게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시킨다. 그리고는 바로 집에 가면 좋으련만, 불문율처럼 아이는 어린이집 내 놀이터에서 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하원 후 놀이터에는 항상 비슷한 시간 비슷한 아이들이 있고, 어머니들은 서로 소소한 일상이나 어린이집 생활에 관한 작은 대화를 나누신다. 그러면 나는? 이 때도 멋적게 웃으며 어머니들에게 인사를 하고 한 구석에 서 있는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탄 버스 만큼 어색하다. 괜히 핸드폰이나 보고, 그네나 밀어주고, 아이들에게 달콤한 젤리나 나눠준다. 그러고는 아이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이제 집에 가자..’ 그러면 아이는 ‘싫어~~’ 하며 도망간다.

 가끔 아내가 하원을 하면 어머니들과 놀이터에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러면 항상 같은 말들을 하신다고, ‘요즘 아버님이 자주 오시더라고요~’. 나는 이제야 아이 친구들 이름과 얼굴도 겨우 외웠는데 어머님들 얼굴은 도저히 매칭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고 보고 있다. 불편하다 불편해..  

   

  

 

 

2020/11/11 15:45

육아휴직-2(내가 좋아하던 일들) 시시콜콜한 이야기




 도시를 걷는 일을 좋아했다. 강남처럼 블록이 큰 거리의 단조로움보다 강북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벌어지는 우연과 의외의 풍경을 사랑했다. 하이퍼텍 나다에 가서 보는 영화도 좋았다. 혜화역에 내려 10분쯤 걷고 영화관에 도착해 상영관 옆 커튼이 닫히면 영화가 시작했다. 하이퍼텍 나다가 문을 닫고 나서는 씨네큐브에 자주 갔다. 서점도 좋아했다. 약속이 없는 오후에는 하릴없이 광화문 교보문고를 돌아다녔다. 돈이 없어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사지는 못했지만 서가에 끝없이 진열된 책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의 공기가 아늑했다. 그리고 또 뭘 좋아했더라..

 5년 전 아이가 태어났다. 계획한 일은 아니었기에 준비가 부족했다. 아이의 피부처럼 가정을 지켜줄 외피도 연약했다. 할 수 없이 시작한 양가의 도움.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6개월 씩 양가에 얹혀 살다 시피 했다. 늙은 부모들의 힘들어하는 모습과 불편한 기색,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독립할 방법이 없다는 자괴감. 서울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군 복무를 하던 서산의 관사를 거쳐 부처가 있는 세종시로 이사. 일은 늘 바빴지만 조직은 만족을 몰랐고 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다행으로 생각하는 점. 아이는 건강하고 착실하게 성장해주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는 맞벌이가 가능해질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나무의 나이테가 새겨지듯 이 모든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최근 몇 년간 좋았다던 영화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도, 재능 있는 밴드의 신곡도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 강북의 모퉁이는 커녕, 서울에 출장을 오면 기차시간에 맞춰 서둘러 내려와야 하는 삶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게 정말 자연스러운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일로부터 멀어져도 나는 나일 수 있을까?
   




2020/11/10 15:30

육아휴직-1(휴직의 이유) 시시콜콜한 이야기




 지난 봄 육아휴직을 했다. 주된 이유는 코로나의 유행이었다. 어린이집 등원이 중단되고 5살 딸의 가정 보육이 시작되자 집안에는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다른 맞벌이 가정이 그러하듯 우리가 얼마나 허술한 반석 위에 가정이란 공동체를 경영하고 있었는지 알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달 정도 양가 부모님을 모셔와 도움을 청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부모님들은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아들 혹은 사위의 집에 있는걸 불편해하셨고, 손녀의 육아는 애초에  그들 몫이 아님을 우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정에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내는 아이가 2살 때 이미 일을 1년 쉬었고 커리어로도 현재 중요한 시기여서 휴직은 내 몫이었다. 하지만 내 휴직의 이유가 오롯이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급 머슴’, 날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이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재학 중에 고시를 합격했고 어린 나이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똑같은 월급쟁이지만 난 좀 달라, 난 좀 더 능력 있고 더 큰 일을 해낼거야’ 라는 막연한 자부심과 유치한 자신감을 가진 날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남에게 월급 받는 직장인이 그러한 종류의 자부심을 오래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현실에 부합한 생각도 아니었다. 사회 생활 8년차 이제 나는 정확하게 안다. 고급 머슴도 머슴이고, 머슴은 주인은 커녕 더 높은 머슴이 시킨 일을 모욕을 당해도 해내야 한다. 내가 원한 삶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삶을 굳이 선택한건 젊은 날의 나였다.

 쉼표가 필요했다. 지난 날 내가 선택한 직업과 그 이유, 현재의 불만족을 정확하게 응시할 시간이 필요했다. 휴직 초반에는 타인에 대한 화로 가득 차있었다. 무책임한 상사, 불합리한 의사결정 구조, 비효율적인 공조직의 행태 등.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는 부서지지 않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타인에 대한 화로는 타인은 커녕 내 자신도 바꾸기 어렵다. 사실 내가 진정 되돌아봐야 하는건 누적된 선택을 견디지 못한 내 자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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