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7 01:40

와일드 시시콜콜한 이야기



  인생의 고통을 또 다른 고통으로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인생의 고통과 트레킹의 고통은 무척 다르다. 셰릴과 어머니는 이성적/감성적, 교육받은 지식인/평범한 주부라는 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사실 인생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둘은 공유하는 세계관이 있다. 그 힘으로 폭력적인 아버지라는 깊고 축축한 그늘을 견뎠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은 셰릴의 어머니를 황망하게 덮친다. 그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노력에 따라 인생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셰릴의 세계관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완전히 무너진다.(어머니의 '말'은 또다른 어머니인데, 셰릴과 남동생은 조물주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병에 걸린 말을 총살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예상 그대로다. 무분별한 섹스, 마약 중독, 원치 않은 임신, 중절 등. 셰릴의 세계관이 단단했던 바로 그 만큼 무너진 세계관의 파장은 남달랐다. 모든 걸 잃은 셰릴이 떠나는 트래킹. 4,285km의 여정은 사실 우리가 사는 삶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가끔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외로웠으며 때로는 강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도 엄습했다. 목이 말라 주저 앉고 싶을 때도, 때아닌 폭설로 무릎이 꺾일 때도 있었지만, 매일 뜨는 일출과 일몰은 어머니의 기억을 강하게 환기시키며 그녀의 완주를 도왔다. 하지만 진짜 인생과 트래킹이 다른 지점은 딱 한가지였다. 트래킹은 발 딛는 만큼, 즉 노력한만큼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준비가 철저하거나 체력이 강한 것은 중요치 않다. 그저 한 걸음 더 걷는 사람이 마침내 완주하게 되는 합리적인 세계관이 선연히 살아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트래킹을 통해 어머니의 죽음으로 무너졌던 셰릴의 세계관은 복원된다. 어머니가 끝까지 지켰던 긍정의 신념을 가진 세계관 말이다. 영화의 카메라는 대자연 앞에서의 셰릴이 아니라, 한 걸음 더 걷는 셰릴에 주목한다. 그것이 바로 셰릴이 찾고 싶던 자신의 본모습이었으므로. 어쨌든 셰릴은 남다른 여자다. 리즈 위더스픈이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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