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5 23:47

도시의 입장권, 공화주의 도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독일

  얼마 전, 한 친구가 집을 사겠다며 같이 가서 봐달라고 했다. 친구는 서대문구 연희동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에서 예찬한 가로수길처럼 될 거라며 들떠 있었다. 과연 그랬다. 세련도니 상점과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는지, 친구가 이유를 물었다. "왜? 별로야?" "난 좀 그래.... 이걸 좀 봐." 나는 인도에 반쯤 걸쳐 그어진 주차 구획선을 가리켰다. 구청 사람들이 나와 그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인도를 줄여서라도 주차를 하겠다는 건데, 이런 행정 자세로 가로수길처럼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가로수길의 성공은 한 뼘 높이의 인도에 있다. 그리고 차가 올라설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인도가 오히려 성공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도에 걸쳐서라도 주차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태도는 자신의 가게 앞에 차 한 대쯤 세우는 게 무슨 대수냐고 눈을 흘기는 가게 주인과 꼭 닮아 있다. 차를 피해 걸어야 하는 거리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쫓아내 자동차 안으로 밀어 넣는다. 자가용, 택시, 최소한 마을버스라도 타야 한다고 밀어낸다. 그리고 자동차들은 대형 마트로 향한다. 쾌적한 주차장과 가짜 거리가 있는 쇼핑몰로 향한다.
  인도 주차는 불법이다. 법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되살리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의지와 자각, 그리고 실천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 '못된 건축', 이경훈


  모처럼 풀린 날씨, 안국역에서 감고당길 따라 정독도서관을 지나 삼청공원 근처까지 걷는다. 삼청동을 배경처럼 감싸고 있는 인왕산의 정취를 담아 비교적 차도와 인도가 분리된 골목길 사이사이로 저층 위주의 상업시설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상점의 쇼윈도는 보행자들의 시선을 모은다. 지난 10년간 삼청동의 상권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토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청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주치는 광경들이 있다. 주변 음식점들이 '발렛 파킹'이란 이름으로 인도에 손님의 차를 아무렇게나 주차하고, 길 사이 사이 주차장 진출입로에는 미처 주차하지 못한 차들이 삐져 나와 보행자들의 통로를 방해한다. 난폭한 음식점 발렛보이는 인도에서 후진하며 보행자에게 위협적으로 클락션을 울려대기도 한다. 심지어 관공서인 주민센터 앞은 아무렇게나 주차한 차로 뒤덮여 인도를 거의 대부분 막고 있기도 하다. 현행법상 인도 위 주차는 물론, 사유지라고 하더라도 공유지인 인도를 거쳐 차를 진출입할 경우 무조건 불법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에 따른 엄정한 법집행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삼청로의 인도를 차도와 분리하기 위해 인도의 높이를 차도보다 높이든 볼라드를 군데 군데 설치하든 차량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역 상권 연합회의 조직화된 여론이 두려워서일 가능성이 높다. 인도 주차를 제한하면 손님이 줄어들 것이라고 굳게 믿을테니. 하지만 삼청동이 이만큼 성장한 건 비교적 차도와 분리되어 보행자들을 안전하게 상점과 연계하는 인도 때문인걸 그들이 알까.

  '공화주의'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의 이익을 조금씩 떼어 네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면, 결국 개개인의 이익은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할 때 보다 커진다. 시민사회의 전통과 역량이 미천하여 공화주의를 체득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차보다 인도가 우선이라고, 쾌적한 주차보다는 보행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지역의 상권이 살아난다는 외침이 너무나 공허하다. 그래서 오늘 삼청동에서 본 풍경은 화가 나기보다는 차라리 슬펐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덧글

  • 2015/02/16 00:1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도화 2015/02/17 17:09 #

    또다시 추워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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