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7 10:43

1Q84 시시콜콜한 이야기

  남들보다 늦게 읽은 하루키의 책이다. 달이 두개가 뜬 세상, 리틀피플이 마더와 도터를 만들어내는 세상의 이야기는 기괴해 보인다. 지나친 환상문학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그렇지만 이미 정해진 것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들 아니었을까. 하루키가 이토록 희망적인 사람이었나 하는 놀라움이 있다. 지우기 힘든 몇 개의 자욱을 붙잡으며, 그 이후의 이야기는 딱히 중요한 삶이 아니라던 하루키의 소설이, 덴고와 아오야마가 만나기 위해 시간과 세계를 '이동'시키는 모험을 감행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서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혼쾌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다자키 스쿠루처럼 지난날의 황폐함을 (그게 겉모습에 불과하더라도) 완벽한 균형잡힌 모습으로 감춘 어른의 이야기가 더 좋다. 

  하지만 이 환상문학에서 아오야마가 덴고의 아이를 '수태'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 소설은 내게 더 이상 환상이 아닌 현실의 문학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가진 여자가 아이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매일 두 개의 달을 보며 미끄럼틀이 있는 공원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이야기라니. 어떤 대목에서는 거의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이건 서사나 문장의 힘이라기 보다는 나의 개인적인 상황에 기인한 것이지만.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됐건, 이곳은 하늘에 달이 두 개 떠 있는 그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덴고의 손을 잡고 있다. 우리는 논리가 힘을 갖지 못하는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였고, 힘든 시련을 뚫고 서로를 찾아내고, 그곳을 빠져나온 것이다. 도착한 곳이 예전의 세계이건, 또다른 새로운 세계이건, 두려울 게 무엇인가. 새로운 시련이 그곳에 있다면,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 된다. 그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더이상 고독하지 않다." -1Q84 3권, p.730

  3권, 20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이 소설은 어쩌면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미완일지 모른다. 수도고속도로 3호선 광고판의 호랑이의 방향이 바뀐 이유는 무엇인지, 누가 마더와 도터인지, 그래서 정말 달이 두 개인 그 장소를 무사히 빠져나왔는지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덴고와 아오야마 두사람이, 아니 '이 작은 것'까지 포함한 세사람이 헤어지지 않는 세계에 무사히 발딛고 서 있기를 바란다.   

  

덧글

  • 2015/10/07 17:3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도화 2015/10/07 17:44 #

    자 이제 도전해보는거야 완독을 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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