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0 15:30

육아휴직-1(휴직의 이유) 시시콜콜한 이야기




 지난 봄 육아휴직을 했다. 주된 이유는 코로나의 유행이었다. 어린이집 등원이 중단되고 5살 딸의 가정 보육이 시작되자 집안에는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다른 맞벌이 가정이 그러하듯 우리가 얼마나 허술한 반석 위에 가정이란 공동체를 경영하고 있었는지 알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 달 정도 양가 부모님을 모셔와 도움을 청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부모님들은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아들 혹은 사위의 집에 있는걸 불편해하셨고, 손녀의 육아는 애초에  그들 몫이 아님을 우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정에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내는 아이가 2살 때 이미 일을 1년 쉬었고 커리어로도 현재 중요한 시기여서 휴직은 내 몫이었다. 하지만 내 휴직의 이유가 오롯이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급 머슴’, 날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이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재학 중에 고시를 합격했고 어린 나이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똑같은 월급쟁이지만 난 좀 달라, 난 좀 더 능력 있고 더 큰 일을 해낼거야’ 라는 막연한 자부심과 유치한 자신감을 가진 날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남에게 월급 받는 직장인이 그러한 종류의 자부심을 오래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고, 현실에 부합한 생각도 아니었다. 사회 생활 8년차 이제 나는 정확하게 안다. 고급 머슴도 머슴이고, 머슴은 주인은 커녕 더 높은 머슴이 시킨 일을 모욕을 당해도 해내야 한다. 내가 원한 삶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삶을 굳이 선택한건 젊은 날의 나였다.

 쉼표가 필요했다. 지난 날 내가 선택한 직업과 그 이유, 현재의 불만족을 정확하게 응시할 시간이 필요했다. 휴직 초반에는 타인에 대한 화로 가득 차있었다. 무책임한 상사, 불합리한 의사결정 구조, 비효율적인 공조직의 행태 등.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는 부서지지 않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타인에 대한 화로는 타인은 커녕 내 자신도 바꾸기 어렵다. 사실 내가 진정 되돌아봐야 하는건 누적된 선택을 견디지 못한 내 자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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