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1 15:45

육아휴직-2(내가 좋아하던 일들) 시시콜콜한 이야기




 도시를 걷는 일을 좋아했다. 강남처럼 블록이 큰 거리의 단조로움보다 강북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벌어지는 우연과 의외의 풍경을 사랑했다. 하이퍼텍 나다에 가서 보는 영화도 좋았다. 혜화역에 내려 10분쯤 걷고 영화관에 도착해 상영관 옆 커튼이 닫히면 영화가 시작했다. 하이퍼텍 나다가 문을 닫고 나서는 씨네큐브에 자주 갔다. 서점도 좋아했다. 약속이 없는 오후에는 하릴없이 광화문 교보문고를 돌아다녔다. 돈이 없어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사지는 못했지만 서가에 끝없이 진열된 책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의 공기가 아늑했다. 그리고 또 뭘 좋아했더라..

 5년 전 아이가 태어났다. 계획한 일은 아니었기에 준비가 부족했다. 아이의 피부처럼 가정을 지켜줄 외피도 연약했다. 할 수 없이 시작한 양가의 도움.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6개월 씩 양가에 얹혀 살다 시피 했다. 늙은 부모들의 힘들어하는 모습과 불편한 기색,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독립할 방법이 없다는 자괴감. 서울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군 복무를 하던 서산의 관사를 거쳐 부처가 있는 세종시로 이사. 일은 늘 바빴지만 조직은 만족을 몰랐고 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다행으로 생각하는 점. 아이는 건강하고 착실하게 성장해주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는 맞벌이가 가능해질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나무의 나이테가 새겨지듯 이 모든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최근 몇 년간 좋았다던 영화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도, 재능 있는 밴드의 신곡도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 강북의 모퉁이는 커녕, 서울에 출장을 오면 기차시간에 맞춰 서둘러 내려와야 하는 삶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게 정말 자연스러운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일로부터 멀어져도 나는 나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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